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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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32년)의 전국적인 행정개편으로 해남현이 해남군으로 승격되면서 그동안에 해남에 딸려 있던 완도의 서쪽지역을 완도군에 내어주고, 현일과 현이면을 각각 군일과 군이면으로 황일면을 황원면으로, 황이면을 문내면으로 고치고 혁파된 황원목장의 자리에 새로 관저면을 만들었다. 또 다음해에는 도서지방을 완도군에 이속시켰는데 1906년 월경지인 진도 삼촌면, 영암의 옥천시면,옥천종면,북평시면,북평종면,송지시면,송지종면등 6면을 합하여 23면...
[조선왕조실록]은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민족 문화 최대의 문화유산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무수한 정보가 담겨져 있는 [실록]은 조선시대의 전반을 연구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대형 정보 창고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 중에는 향토사를 더욱 살찌우게 하는 사료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향토사 연구자들이 흔히 부딪치는 자료 부족의 갈증 또한 이런 사료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총 42명에 이르는...
해남이 백제에서 고려까지의 분립되었던 행정체계를 청산하고 하나로 묶어지는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서다. 왜구의 침탈로 해남땅에 피난하던 진도를 합하여 해진군이 된 해남현은 1409년(태종9) 갑자기 확대된 영역을 다스리는 관부로서 그 중심치소를 지금의 삼산면 나범리인 구 녹산역지에 새로 성을 축조하여 옮기게 된다. 해진군에 합한 땅은 해남에서 해남현과 죽산현, 그리고 이때에 죽산현에서 분립한 진산현이며, 진도에서 진도군과 가흥현, 임준현이 ...
백제와 통일신라시대까지 해남지역에 존재하였던 3현은 서로 반독립적인 행정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가 되면 완전히 달라져 아예 영암군역으로 편입되는 변화를 겪게 되면서 지역세력의 분포에도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보게 된다. 새로 등장하는 행정단위와 그 명칭에는 우선 지금의 옥천면 영춘지역의 옥천현(옛 냉천부곡), 지금은 현산면으로 옛 송지면 월송지역에 송양현, 그리고 송지면 마봉지역에 마봉소, 북일면 흥촌지역에 북평향, 같은 북일...
한반도의 서남단 해남을 백제가 완전히 장악한 것은 조산고분년대인 6세기초로 본다. 이로부터 백제패망년대인 서기 660년을 하한으로 하여 약 150-160년간 해남은 백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신라에 병합된 구백제영토는 685년까지는 신라식 4주와 3소경에 속한 다수의 군현으로 편제되어 일부 명칭의 변경이 있을 뿐이다. 신라가 당제를 도입하여 주.군.현의 영속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지명도 모두 바꾼 것은 757년의 일이다. 이로써 해남의 구백...
백제시대에 해남지역에는 3개의 군현이 있었던 것으로 지지류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현산면과 화산면 일원에 성립되었던 새금현, 화원반도 일원에 성립되었던 황술현, 마산면, 계곡면과 산이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는 고서이현이다. 백제의 지방편제가 제도로서 확립된 것은 사비시대의 일로 소위 오방제라는 것이다. 오방제는 지방을 오방으로 나누어 각 방에 700-1200여의 군대를 두어 방령을 배치하고 예하에 6-10군을 거느리게 하는 제도였다. 그리고 ...
마한시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고대 해남문화의 요람은 백포만 연안의 철기시대 문화이며 군곡패총 세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북진하여 영산강 문화에 합류하여 그 기반이 되거나 영향을 주고 남진하여 제주와 동진하여 삼천포에 이르는 가운데 중국 한대(漢代)의 신(新)과 교역하는 등 이 지역에 마한 국읍세력의 일대세력을 출현시키는데 충분한 요소가 되었다. 마한소국의 하나인 소위건국(素謂建國)이 그것으로 이 소위건국은 그 이름이 백제에서 새...
해남의 선사시대는 백포만 연안의 두모리 패총을 남긴 신석기시대 후기의 즐문토기(櫛文土器)에서 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점차 내륙으로 들어가 강 언덕이나 후미진 바다기슭의 언덕으로 퍼져 청동기 시대가 되면 3∼4개의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전지역에 걸쳐 90여군 9백여기의 지석묘를 남기게 된다. 이들이 다음 시대인 철기시대에 보이는 마한소국(54국)의 기반세력들이다. <참고문헌> 해남군의 문화유적, 국립목포대박물관/해남군,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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